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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뿔이 달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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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언론인·세태평론가

 


굳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속뜻을 전할 순 없을까? 뜬금없이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되는 건 말들이 범람해서일 것이다. 왜 그런 의사소통이 없겠나.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산과 강, 공원으로 나들이 길에 오르면 길목 저편에서 얼마든지 그런 침묵의 소통을 목도할 수 있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손잡고 걸어가는 노부부의 그 마주잡은 손끝에서, 벤치에 앉은 연인들의 맞댄 어깨에서, 말없이 그러나 사무치도록 대화가 끊임없이 오가는 것을.

침묵의 의사소통! 거기에는 수천수만 가지의 언어들이 불꽃처럼 스친다. 말을 토해내지 않아도 영롱한 언어들이 손끝과 어깨에 굴러다니는 것이다. 어느 가수는 그래서 소리 없는 침묵으로도 말할 수 있다고 목 놓아 사랑을 노래했다. 침묵하는 것만으로도 하나가 된다고 했다. 그렇다. 오랜 세월 긴 그림자를 함께 이끌고 온 노부부는 마주잡은 손끝만으로도 그 고단함이 풀렸을 것이고, 연인들의 사랑은 맞댄 어깨의 작은 몸짓 하나만으로도 영글었을 것이다.

사랑은 어쩌면 침묵 속에서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침묵이 최고 경지의 언어라고 했던 걸까. 사랑이 잠재운 침묵. 그곳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곳이 고즈넉한 길섶이든 시선이 폭우처럼 쏟아지는 거리든 빗장을 걸지 않아도 방해받지 않는다. 침묵은 눈빛의 언어이자 마음의 언어이기에 그럴 것이다. 어느 날 문득 화사한 햇빛이 금가루를 뿌리거나, 소낙비라도 내려줄 양이면 무언의 속삭임은 한 편의 시가 된다.

눈빛과 마음의 언어! 그것이 정녕 뜨거우면 심장을 고동치게 하고, 절절하면 눈물겹기까지 하다. 엄마와 아기가 대화하는 모습을 보라. 엄마들은 아기의 옹알이를 금세 알아듣는다. 소리보다 눈빛과 마음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고, 가슴으로 듣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이 가슴으로 의사소통할 수만 있다면? 세상 시계바늘은 일찍이 '평화'를 가리키고 있었을 터다. 세상이 시끄럽고 때론 흐려지는 것은 이해득실에 오염된 헛말들이 먼지투성이로 풀풀거리는 까닭이다.

말은 참 묘한 녀석이다. 같은 말이라도 뱉어내는 입에 따라 숨은 뜻이 다르거니와 듣는 귀에 따라 천차만별로 해석된다. 신경을 곤두세워도 의사소통이 어려운 이유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범속한 일상에서 말이 많으면 괜한 오해의 불씨를 낳기 십상이다. 그 오해가 천리 길을 달려가는 게 문제다. 그러기에 우리 경험칙이 이렇게 일러주었다. 생각 없이 쏟아내는 말끝은 늘 허전해지고, 더러는 흉기로 변해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경고했더랬다.

쓸데없이 지껄이는 말은 잡담이라고 부른다. 잡담에는 사색과 성찰이 담겨 있지 않다. 그나마 세월의 나이테가 만들어주는 자신의 언어마저도 타성의 와류에 휩쓸리고 만다. 영혼의 빛깔이 퇴색되는 것이다. 사색과 성찰이라는 필터를 여과한 말에는 영롱한 진실이 고여 있다. 그것이 참말이다. 참말은 무게가 있고, 와 닿는 울림이 크거니와 역설적이게도 짧을수록 여운이 길다. 이해의 폭도 넉넉하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말에는 표정이 있다. 말 구절구절마다 그 사람이 보인다. 넉넉한 뜰이 있는 말에는 따스함이 묻어나고, 사랑이 넘실거린다. 자연의 순백 향기를 맡을 줄 아는 말은 고결한 품성이 배어난다. 바람 소리를 들을 줄 아는 말은 깊은 감성이 보인다. 뿔이 달린 말은 가슴 아파하는 얼굴이 숨겨져 있고, 소리 없이 울부짖는 눈물이 보인다. 그 말 속에는 식솔들을 책임져야 하는 집안의 가장들과 취업난에 좌절한 젊은이들이 웅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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