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이 법정관리인 '프리패키지드플랜(P플랜)'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지면서 금융권에서는 이 불똥이 은행권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하는 모습이다. 국내 은행들이 떠안고 있는 기업 부실채권은 2016년 말 기준 22조8000억원 규모다. 기업 구조조정발 신용등급 강등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이에 따라 각 은행은 먼저 부실 가능성이 큰 대기업 대출 옥죄기로 충당금 충격을 완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기업 구조조정 확대…은행 신용등급은?
12일 금융투자업계와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고정이하여신비율은 1.42%, BIS(국제결제은행)기준 총자본 비율은 14.92%이다. 전년 말(1.80%, 13.90%) 에 비해 좋아졌다.
영업 성적은 그럭저럭 괜찮다. 특수은행의 희생(취약업종 지원)에 힘입어 일반은행의 수익성이 보호되고 있는 것. JP모간은 "순이자마진(NIM)확대, 견조한 자본건전성과 낮은 대손비용, 판매 관리비용 절감 노력 등으로 신용등급 하향 조정 가능성은 크게 낮은 수준이다"고 말했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질 가능성이 커졌다. 바로 대우조선해양이다. 당장 유동성도 문제다. 오는 4월 21일 4400억원을 시작으로 내년까지 회사채 1조5000억원을 갚아 내야 한다. 2015년 중순 5조원대 분식회계가 드러난 후 국책은행의 자금 지원·출자전환을 통해 7조원 이상이 수혈됐지만, 수주 절벽이 길어지면서 회사 자금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2조8000억원을 지원해 7000%대에서 900%대로 떨어뜨린 부채비율은 4개월도 안 돼 2700%로 치솟았다.
시장에서는 법정관리의 일종인 '프리패키지드플랜(P플랜)'으로 갈 가능성이 커졌다고 본다. 정부와 채권단은 17, 18일 열릴 사채권자 집회에서 채무조정안이 부결되면 21일 전후로 대우조선해양을 P플랜에 집어넣겠다고 공언했다. 대우조선이 P플랜 1호 기업이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현재로선 짐작하기가 어렵다.
은행의 자산 건전성에 적잖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은행·사채권자 보유 채권은 21조5000억원 규모다. P플랜은 일반 법정관리와 마찬가지로 무담보채권에 대해 대규모 출자전환을 요구한다. 채권단은 그 비율을 90%로 보고 있다. 나머지 10% 채권도 길게는 10년 가량 분할상환하는 것으로 예상한다. 대우조선해양이 위기를 넘기지 못해 도산할 경우 청산가치는 5조6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청산 땐 최대 80% 가까운 손실이 불가피한 셈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21조5000억원을 고정이하여신으로 분류하면 고정이하여신비율은 2.66%까지 높아진다.
이혁준 금융평가본부 금융평가1실장은 "실질적으로 은행의 자산건전성이 안정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BIS자본비율 또한 잠재부실에 대해 충당금이 적게 적립된 가운데 대손준비금을 보통주 자본으로 인정해 주는 은행업감독규정 개정효과가 0.50%포인트에 달하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은행의 돈 벌이도 걱정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특수은행의 취약업종 지원은 납세자의 세금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이러한 상황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특수은행의 취약업종 내 주요 기업에 대한 지원이 중단되거나 대폭 축소될 경우 관련 협력업체를 차주로 많이 보유하고 있는 은행(특히 지방은행)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낙수 효과도 단기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시장금리 상승은 단기적으로 은행의 순이자마진(NIM) 개선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그러나 중기적으로는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대출금리 상승을 감당하지 못하는 차주 증가로 인한 대손비용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걱정했다.
국내 은행들이 떠안고 있는 기업 부실채권은 2016년 말 기준 22조8000억원 규모다. 기업여신의 부실채권 비율은 2.06%다. 2012년 말(1.6%)에 비해 여전히 높다. 특히 조선업(11.20%) 해운업(5.77%) 철강제조업(4.09%) 등 일부 업종의 부실채권 비율이 높다.
신평사들은 국내 은행업의 신용위험이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높다고 말한다.
나이스의 이 실장은 '2017 산업위험 평가(은행)'에서 "은행업의 2017년 신용등급 방향성은 '부정적(Negative)'이다"면서 "시중은행은 등급이 견고하겠지만 지방은행은 자본적정성이 다소 떨어지는 가운데 취약업종 기업여신을 중심으로 부실이 확대되고 사업기반인 지역경제가 더욱 위축될 경우 등급하향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내 신평사 관계자는 "현재 국내 은행업은 수익성 저하와 자산건전성 저하 그리고 정부의 지원 가능성 저하 등을 겪고 있다. 비록 자본적정성은 금융위기 당시 대비 개선된 상황이나 수익성 및 자산건전성 저하가 지속될 경우 비교적 작은 충격에도 자본적정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도입을 앞둔 '채권자 손실분담(베일 인·Bail-in) 제도' 도 부담이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한국 정치 불안과 기업 구조조정으로 인한 불확실성은 여전히 커지고 있다"며 "특히 베일인 제도가 도입되면 일부 한국 은행의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정현 한국기업평가 평가전문위원도 "이 제도가 도입되면 신용등급 하락 또는 리스크 프리미엄 증가로 은행권의 조달비용이 상당 수준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걱정했다.
◆우량 기업…대출 받기 어려워지나
그동안 실적 때문에 기업 대출에 공을 들였던 은행들이 대우조선 사태로 대기업 여신을 깐깐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기업 상황이 좋지 않은 대기업을 대상으로 매년 중점관리그룹을 선정, 만기 여신의 경우 상환요청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면서 여신을 줄여가고 있다. 특히 신용등급이 좋지 않은 데다가 담보 없이 주로 신용으로 대출을 받은 기업들을 대상으로는 계속해서 채무 독촉을 진행하는 상황이다.
돈 빌릴 데가 마땅치 않아진 기업들은 속앓이한다. 그렇다고 회사채 발행 여건이 좋은 것도 아니다. 국내 회사채 시장은 연 초 발행물량이 줄어 들면서 춘곤기 상태다. 특히 A등급 이상의 우량등급 회사채 시장이 크게 경색됐다. 지난 3월 회사채 발행액은 5조4000억원으로 1조1000억원(16.8%)이나 줄어들었다. A 등급 이상 회사채는 전달보다 2조6000억원(46.4%) 줄어든 2조9000억원 발행되는 데 그쳤다.
신용등급 하향 추세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2017 년 초 신용등급을 보유하고 있는 367개사 중 등급 상승은 1개사였다. 등급 하락은 7개사였다.
송태준 한기평 평가기준실장은 "경기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향후에도 하향 우위의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