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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40년 비하인드 스토리] (12) 1988년 지하철타기운동은 실상 빚갚기운동이었다

1988년 실시된 지하철관광사업 모습. /서울메트로30년사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서울에서는 대대적인 지하철 타기 운동이 펼쳐졌다. '한강을 지하철로 건너자'라거나 '1일 1만보 걷기운동은 지하철로'라는 슬로건이 내걸렸고, 캠페인의 주체인 서울지하철공사(서울메트로의 전신)는 지하철문화권이라는 개념까지 만들었다. 최초로 유치하는 올림픽에 맞춘 문화운동이나 시민캠페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1일 승객 450만 명 수송'이 목표인 매출 증대 운동이었고, 이는 1기 지하철 건설 과정에서 생긴 막대한 부채를 갚기 위한 것이었다.

서울메트로30년사에 따르면 서울지하철공사는 출범 당시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 있었다. 차관에 의존한 지하철 건설 결과 1986년 공사가 안고 있던 부채는 1조8000억 원을 넘었다. 부채 규모가 커짐에 따라 눈앞으로 다가온 원금상환도 문제였지만 이자부담도 원금 못지 않게 컸다. 영업수익만으로는 이자를 갚기도 벅찬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부채는 해마다 늘어나 경영압박의 요인이 됐다. 1986년만 해도 상환해야할 원금이 3000여억 원에 이르렀으나 운송수입은 1000억 원 정도에 불과해 심각한 재정난이 닥쳤다. 급기야 공사는 낮은 금리의 빚을 내서 고금리의 빚을 갚는 돌려막기 상황까지 몰리게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하철 운영을 시작한 이래 수송수입보다 운영비용이 초과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적자 누적은 더욱 악화돼 갔다. 결국 1994년부터는 결손누적에 다른 자본잠식 상태가 됐다. 1996년말 기준 공사의 자본금은 2조 1872억 원, 부채는 2조 4604억 원. 부채가 자본보다 2732억 원이나 많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서울지하철공사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지하철역 곳곳에 아이디어함을 설치해 경영개선에 도움이 될 아이디어를 모집하는가 하면 임직원 모두가 나서 대대적인 판촉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근무시간 틈틈이 조를 편성해 학교나 기업을 찾아가 정기권 구매를 호소했고, 가두판촉활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1987년말에는 TV와 라디오 광고까지 동원했다.

1988년 펼쳐진 대대적인 지하철타기 캠페인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다. 서울지하철공사는 이때 서울시내 지하철 관광코스를 개발해 지하철과 서울시내 관광을 연계하는 사업을 벌였다. 이른바 지하철관광사업이다. 7월 11일 개통식을 갖고 시작한 지하철관광사업은 당산역에서 출발하는 산업코스, 구파발역에서 출발하는 반공전적지코스, 종합운동장역에서 출발하는 올림픽공원코스 등 3개 코스가 운영됐다. 요금은 1500~2000원이었다.

수익사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공사는 부대수익을 올리기 위해 역 구내의 여유공간을 상가로 조성, 일반인에게 임대하는 상가 조성 임대분양 사업도 벌였다. 현재의 지하철 상가의 효시다. 1986년초에 생긴 역 상가는 3호선 6개소, 4호선 63개소 등 19개 역사에 127개소가 있었다. 당시 1차분양에는 경쟁률이 평균 316대1에 달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다.

지하철 역사의 벽면을 광고공간으로 개발한 것도 바로 이때다. 이후 광고수입은 지하철운영사의 매우 중요한 수입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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