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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40년 비하인드 스토리] (9) 대우의 지하철 꿈, 2차 오일쇼크에 무너지다

[서울지하철 40년 비하인드 스토리] (9) 대우의 지하철 꿈, 2차 오일쇼크에 무너지다

70년대 서울의 1기 지하철 공사모습. 막 경제개발을 시작한 한국에게 지하철 공사는 감당하기 힘든 재원을 요구했다. /서울메트로



서울메트로의 전신인 서울지하철공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공기업이다. 하지만 이같은 역사적 기록은 당초 정부도 서울시도 원했던 바가 아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지하철 운영사는 원래 대우그룹의 몫이었다. 정부는 민자사업자를 원했고, 대우그룹도 운영사가 되기 위해 의욕적으로 1기 지하철(1~4호선) 건설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70년대 후반 다시 몰아닥친 오일쇼크는 이같은 대우의 '지하철 꿈'을 무너뜨리고 만다.

정부나 서울시나 모두 지하철 공사를 위한 막대한 재원의 조달은 부담이었다. 1974년 광복절에 맞춰 간신히 1호선의 종로선 구간을 개통했지만 2호선 건설에 들어가자 갓 경제개발을 시작한 신생국 경제의 취약함이 드러나고 만다. 서울시는 1975년 2호선 공사를 계획할 때만해도 이 공사에 2220억원이 들어갈 것이라는 용역결과를 얻었지만, 막상 1978년 공사를 시작하기 직전 두배가 넘는 4600억원으로 늘어났다는 조사결과를 보고받는다. 게다가 완공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총 공사비가 878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치솟고 임금과 자재값이 상승한 결과였다. 1기 지하철을 포기할 수 없었던 정부와 서울시는 지하철공채, 시비, 정부 재정투용비, 국고보조 등에 더해 1억 달러의 정부보유 외자까지 동원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2호선 공사와 함께 추진하려던 3호선과 4호선 공사는 건설자금 때문에 공사 착수조차 엄두를 못낼 지경이었다. 급기야 정부는 일부 선진국에서 민간자본으로 사설철도를 운영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에 착안해 민자건설을 검토, 1978년초 지하철 건설 경험이 있는 기업들에게 민자 참여를 요청했다. 여기에 응한 기업이 대우그룹과 율산건설 등이었다. 같은 해 12월 정부는 기술, 자본, 조직 등에서 유리한 대우그룹을 사업주체로 선정하고, 다음 해 7월 대우그룹에게 법적 근거를 제공하는 지하철건설촉진법까지 공포한다.

대우그룹은 의욕적이었다. 계열사인 대우엔지니어링이 나서 곧바로 기본계획을 수립, 3호선을 1979년 착공해 1985년에 개통하고, 4호선은 1981년 착공해 1986년 개통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갑자기 불어닥친 2차 오일쇼크는 대우그룹에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안겼다. 73~74년의 1차 오일쇼크 때 직격타를 피했던 한국은 78~80년 2차 오일쇼크에서는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고도 성장을 이어가던 경제가 79년 성장률이 6.5%로 하락했고, 80년에는 5.2%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을 정도였다. 외채는 200억 달러를 넘어 수출에 의존하던 경제는 풍전등화의 상황이었다. 대우그룹은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대안으로 대우그룹을 주축으로 한 21개 업체(후에 23개로 증가)가 주주 형식으로 참여하는 합자회사를 설립한다. 1980년 2월 출범한 서울지하철건설주식회사가 탄생한 배경이다. 대우그룹은 기본계획 수립 등 기존에 수행하던 모든 업무를 이 신설회사에 넘긴다. 하지만 이 회사 역시 자금난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오일쇼크로 인한 물가상승과 20%를 넘나드는 금리인상, 건설자재와 임금 상승 등이 한꺼번에 몰아닥쳤기 때문이다.

결국 23개 참여회사들이 출자금을 절반도 내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 정부는 사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공사 체제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1981년 9월 1일자로 서울시가 창립자본금 500억원 전액을 출자한 서울지하철공사가 출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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