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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뱅크&뱅커 스토리]<2> 영업의 늪

은행원들은 "실적을 채우지 못할 경우 야근 하며 방안을 모색해야한다"고 말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 '자폭'을 고민하는 은행원의 심정을 가상 대화로 표현했다./사진·그래픽=이범종 기자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A은행 구내식당. 마주 앉은 기자가 영업 이야기를 꺼내자, 김모 씨(30·여)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밥 먹는데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얘기는 삼가 주세요."

최근 은행들은 상반기 실적을 발표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보다 45.2% 늘어난 어닝서프라이즈(예상을 웃도는 이익)를 강조했다. KEB하나은행은 전년 동기 대비 7.6% 증가한 7990억원을 기록했다.

주요 은행의 실적 호조 이면에는 일선 은행원의 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 씨는 서민을 위한 상품이라는 ISA를 답답해 했다.

"절세라는 건 사실상 부자들에 혜택을 주는 개념이에요. 요즘은 1년에 1억원을 부어도 이자가 100만원이 채 되지 않아요. 2000만원도 큰 돈인 서민에게 돌아가는 이자를 생각하면, 굳이 ISA가 필요한지 모르겠어요."

그럼 영업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그나마 이자에 세금 부과 안 한다고 강조해서 계좌 개설을 유도하죠."

지난 1일 금융위원회는 개인의 비활동성계좌를 한 번에 정리할 수 있는 '어카운트인포' 사이트 개설 소식을 알렸다. 비활동성 계좌를 줄여 은행의 통장관리 비용을 줄이고, 개인의 재산권도 지킨다는 취지다. 그러나 한편에선 ISA 영업 압박으로 빈 계좌가 늘었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 ISA계좌 212만4000개 가운데 1만원 이하가 60.2%인 127만9000좌였다.

김 씨는 "(정부가) 한 편에서는 개인 계좌를 정리해 통장을 줄이겠다고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한 번 만들고 마는 10만원짜리 통장을 양산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자폭'으로 때우는 반쪽짜리 실적

강남 D은행 지점의 신모 씨(30·여)는 매일 다른 지점과의 실적 비교표를 마주한다. 그는 "'이번주까지 무조건 몇 좌 유치하고 못 하면 퇴근 할 생각 마라'는 상사의 지시가 제일 힘들다"고 했다.

여의도 E은행에서 일하는 양모 씨(27·여)도 "하루에 큰 실적 한 두 개는 있어야 한다"며 "못할 경우 지점 워크숍이니 실적대책회의 명목으로 야근 하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이럴 때 은행원은 '자폭'한다. 할당량을 채우는 최후 수단이다. 주로 친척과 친구 명의를 빌려 자기 돈으로 상품에 가입한다. 본인 돈으로 할당량을 채워 손해 보기 때문에 자폭이라 한다. 만일 펀드 등으로 이익이 날 경우엔 '자뻑'이라 부른다.

이런 은어가 생긴 이유는 은행업의 특성에 관치금융까지 겹쳐서다. 은행 상품은 5년짜리 단임 정부의 홍보 수단으로 취급된다. 외환위기 이후에는 금융권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행원들이 방카슈랑스(보험)와 펀드를 팔기 시작했다.

B은행 관계자는 "이때부터 동료들이 자기 돈을 펀드에 넣고 3개월 이후 해지하기 시작했다"며 "만일 이게 잘 돼 수익이 생기면 '자뻑'이 된다"고 말했다. 결과에 따라 자폭과 자뻑이 나뉘지만, 시작은 항상 자폭일 수밖에 없다.

이들의 자폭을 방해하는 건 방카슈랑스다. 보통 3개월이면 끝나는 펀드와 달리, 방카슈랑스는 가입기간이 10년 이상이다. 그래서 행원들은 "이것만큼은 자폭 하는 비중이 꽤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자폭과 자뻑은 불완전판매에 해당한다. 그러나 C은행 관계자는 "할당량을 채우기 위한 가족 자폭은 하루 수십만 금융인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료들이 징계도 각오한다"고 했다. 금감원이 어느 날 무작위로 살핀 기간에 자뻑 사실이 드러나고, 당사자가 이의를 제기할 경우 최고 면직 처분을 받을 수 있다.

◆ 1등 거래처 행사에 전직원 출동

은행업은 기본적으로 여수신 장사다. 그러니 '1등 고객'에 잘 보이기 위한 노력도 눈물겹다. C은행 관계자는 "거래처가 여는 행사에 가서 '시다노릇'을 한다"며 "주말에 1등 거래처가 산악회를 가면, 전 직원이 출동해 김밥도 싸가고 운동회 응원도 간다"고 말했다.

본사가 1년 목표를 정하면, 지점은 실적을 한달 단위로 채워간다. 입행 10년차인 설모 씨는 "비이자수익부문 신탁·펀드 실적이 안 좋으면 안 된다"며 "이번 주는 한명 당 펀드 200만원, 이런 식"이라고 했다.

"만일 이걸 못하면, 자기 돈을 넣어야 해요. 내 명의로 못하니까 친구나 가족 명의로 하죠. 결국 자기 마이너스 통장으로 영업하는 겁니다. 넣었다 뺐다 넣었다 뺐다."

그는 잠시 생각 하다 말을 이었다. "그러다 정해진 기간인 한 분기가 끝나면 해당 상품을 해약해요. 만일 손해가 난다면 그건 감안해야죠."

최근 다시 만난 자리에서, 김 씨는 이렇게 말했다.

"은행원 영업이라는 게 전혀 다른 목적으로 방문한 손님에게 '딴 소리'하는 거예요. 고객이 볼 일 마치고 일어서기 전에 다른 상품을 소개하고 설득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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