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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게으른 권력들

홍경한 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과거만 해도 미술의 존재이유와 존재방식에 대한 탐구는 한국 미술계의 절대적 명제였다. 어떤 어젠다든 활기차게 전개했고 예술과 관계 맺는 여러 구성조건과 현상에 관한 논의에도 적극적이었다. 80~90년대만 해도 분명 그랬다. 하지만 당대 현실은 예전 생태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구성원 누구도 미술에 관한 건강한 논담이나 토론을 생성할 의지 및 능력이 없다. 아니, 역할이 뭔지조차 모른다.

일례로 미술평론가들은 비평할 공간도, 여건도 마련하지 못한 채 담론 자체를 능동적으로 이끌지 못하는 신세에 놓여 있다. 예리한 비판의식으로 현상을 똑바로 직시하며 날카로운 담론을 생산하긴 고사하고 미술관이나 화랑이 선정한 작가들을 적당한 선에서 추켜세우며 부풀려 치하하는데 급급한 형편이다. 가치구분이 누락된 비평의 부재 속에서 인맥과 경제성에 얽매여 눈뜬장님처럼 허우적거리는 노쇠한 권력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현장 및 제도를 감시하고 비판해야할 미술저널 역시 제 기능을 상실한지 꽤 됐다. 미술계 각양각층과 가장 근접할 수 있는 특권적 위치에 있지만 발언다운 발언은 좀처럼 접하기 어렵다. 양적 포석이 무색할 만큼 다양한 미술 양상들에 관한 검증을 하지 않으며 동시대가 처한 여러 층위의 문제에 앙칼진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그나마 사주들의 입김에 좌지우지 되는 개인사업체로 전락해 상업공간들의 홍위병 노릇을 자처하거나 단순한 책장사, 광고주(자본)에 읍소하는 비굴한 자세로 일관하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국공립미술관인들 자신의 역할을 다할까. 아니다. 그들 또한 한 나라의 총체적인 미술역량을 가늠하는 척도로써의 자리를 스스로 주저한지 오래다. 그저 서구찬미주의에 빠진 냥 외국작가들을 고가에 모셔와 과대포장하거나 소양 부족한 정치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머릿수 채우는 이벤트성 전시, 돈에 밝은 기획사들의 전시에 공간을 내주는 게 다반사다.

물론 그들이 잘하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전시제목 하나는 그럴싸하게 짓는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와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 서울시립미술관의 '앤솔로지' 등등, 제목만큼은 어찌나 시적이고 포스트모던한지 마치 한국판 데이비드 오길비라도 섭외한 듯한 느낌을 준다. 다만 그 전시들이 담의창출과 얼마나 깊은 연관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시대정신과 미술사적 흐름을 학술적 문맥으로 끊임없이 재생산해야할 미술관의 소임이 제목 속 내용과 일치하는지도 모호하기 일쑤다.

아무리 고개를 돌려도 지금의 미술계엔 치열하게 일군 미술의 가치를 폭 넓은 문화가치로 전이시켜 대중에게 공급하고, 그들의 문화향유와 욕구를 다시 미술현장으로 이끄는 축이 눈에 띄지 않는다. 재벌화가들은 아예 무관심하며 소수의 능력 있는 기획자들과 작가들은 자기 코가 석자라 마음과 달리 미동할 여력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미술의 발전상을 제시하거나 활기찬 시대담론을 통한 예술의 진가와 무게를 기록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도 대안이라면 역시 사람뿐인데, 아쉽게도 책임과 역할은 등한시함에도 견고하기 짝이 없는 기성 얼개에서 동력의 발굴과 새로운 패러다임의 옹립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구심부터 든다. 여전히 서로 간 끊임없는 거래와 공모 속에서 어떤 대상에 작품과 작가라는 지위를 부여하지만 '게으른 미술권력'이기도 한 이들이 일제히 자각하지 않는 한 어쩌면 어림없는 바람인지도 모른다.

※홍경한은 미술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다. 월간 '퍼블릭아트', 월간 '경향아티클' 등, 국내 주요 미술전문지를 두루 창간했으며 편집장을 맡아왔다. 현재는 대림미술관 사외이사, 박수근미술상운영위원 등을 맡고 있으며 비평과 강의, 방송과 집필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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