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나타내는 근원물가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지난해 6%까지 치솟았던 소비자 물가는 정점을 지나 상승폭이 줄어들고 있지만 석유류, 농산물 등 경제상황에 따라 물가변동이 심한 품목을 걷어낸 근원물가는 상승세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근원물가가 여전히 높다는 것은 고물가 국면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물가를 낮추기 위해선 금리인상이 필요하지만, 또 금리인상을 하면 경기 위축을 부추길 수 있어 한국은행의 고심이 깊어질 전망이다.
◆꿈쩍않는 근원물가…고물가 길어질 듯
5일 통계청에 따르면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과 비교해 4.2% 상승했다. 지난 2월(4.8%)과 비교해 0.6%포인트(p) 낮은 수치다.
반면 근원물가(농산물및석유류제외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4.8% 상승했다. 지난해 3월부터 큰폭으로 상승한 근원물가는 올해 1월 5%, 2월 4.8%를 기록했다. 소비자물가지수와 달리 오름폭이 줄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근원물가가 둔화되지 않는 이유는 전기·가스·수도 등 공공요금과 외식, 가공식품 등 먹거리 가격이 상승하고 있어서다. 전기·가스·수도 요금은 전년 동월 대비 28.4% 상승했다. 외식(7.4%) 등을 포함한 개인서비스 가격도 1년새 5.8% 올랐다.
문제는 공공요금과 외식·가공식품의 상승분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한 근원물가는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 앞서 정부는 공공요금은 물론 가공식품 업계에도 가격 억제를 주문했다. 일시적으로 물가 지표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인 대안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국제 유가 역시 하향 곡선을 그릴 것이라고 전망하기 어렵다. 전날 주요 산유국 협의체 OPEC플러스(+)가 대규모 감산에 합의하면서 국제 유가가 다시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경제활동 재개(리오프닝) 시기와 겹쳐 석유 수급 불균형에 대한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 물가안정에 초점…"금리인상해야"
이에 따라 한국은행의 고심도 커질 전망이다. 근원물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은 고물가 국면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2월 금융통화위원 7명중 5명은 (차후 금통위에서) 최종인상 금리를 연 3.75% 수준으로 가져가는 가능성을 열어 둬야 한다는 의견을 내비친 바 있다.
특히 현재 산유국 감산으로 유가는 오름세로 돌아선 상태다. 앞서 이창용 총재는 "우리(한국은행)는 국제유가가 올해 배럴당 70~80달러로 유지할 것으로 가정하고 있지만, 중국의 경제상황이나 우크라이너 전쟁 등에 따라 유가가 90~100달러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있으므로, 변수를 다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유가 하락 등을 고려해 올 연말 물가상승률을 3%대로 예상했는데, 이보다 높아질 경우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미국과의 금리격차도 1.50%p 벌어진 상태다. 이번에 금리동결을 선택한 뒤 오는 5월 3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0.25%p 인상하면 금리격차는 1.75%p까지 벌어진다.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낮아지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가치가 떨어질 위험이 있다.
◆유가·환율 예상치 부합…"금리'동결'로 지켜봐야"
다만 무리한 금리인상은 경기위축을 부추길 수 있다. 앞서 이창용 총재는 지난 2월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한 뒤 "안개가 자욱한 길에서는 차를 잠시 세운다음, 어느 방향으로 갈지 결정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경기불확실성이 커지고,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는 시기, 불확실성 요인을 면밀히 점검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설명이다.
지난달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등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추가 금리인상이 이뤄질 경우, 저축은행이나 증권사 등 약한 고리부터 유동성 부족이 나타나며 시장을 흔들 수 있다.
유가와 환율도 한은의 예상치를 벗어나지 않는 점 또한 금리동결의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 4일 기준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전장보다 6.28% 오른 배럴당 80.42달러였다. 국제유가가 한국은행이 예상한 70~80달러 내외에서 움직이고 있는 만큼 아직까지 금리인상의 필요성은 없다는 것이다.
환율 또한 한미 간 금리격차에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원·달러 환율은 약간 넓은 박스권에서 크게 움직이고 있고, 1320원부근에서 경계감이 있다"며 "최근 원화 약세가 한은의 금리 인상의 영향 때문만은 아닌 만큼 미국 고용지표 등 주요이슈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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